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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유럽의 목욕문화

작성자
:  M&W  작성일 : 2006-03-29 08:13:25  조회 : 1304 


유럽의 목욕문화

문화는 그 나라의 생활방식이나 풍습에 따라 다르다. 동양이든 서양이든 그 나름대로의 지역적인 특성이나 기후적인 조건으로 인해 문화적 양식이 달라진다. 그러나 목욕문화는 동서양에 관계없이 큰 차이점이 없다. 목욕은 일차적으로 몸을 청결히 하는 것을 대전제로 하는 만큼 목욕방식에서만 다소 다를 뿐, 근본적으로는 동일하다. 그러나 목욕을 어떻게 즐기고 향유하느냐에 따라 부분적으로 차이점을 드러낸다.

동양의 목욕문화는 몸을 청결히 하는 것이 일차적이긴 하지만 정신적인 부분을 강조한 측면이 있고 유럽의 목욕은 정신적인 것보다는 육체적인 휴식을 강조한 면이 적지 않다. 그래서 유럽의 목욕탕은 우리나라처럼 몸에 낀 때를 벗겨내기 위한 공간이기 보다는 일반인들이 만나 함께 목욕하며 휴식을 하거나 여흥을 즐기는 공간으로 활용되는 일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유럽의 목욕문화는 한때 남녀의 구분이 없는 혼탕문화를 지니게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일찍부터 ‘남녀칠세부동석’이란 말이 있었지만 유럽에서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전라의 몸으로 동석하게 되었다. 좋게 얘기하면 자연 상태 그대로의 삶을 표현한다고 하지만 아무래도 윤리와 도덕이 지배하는 우리나라의 시각에서 보면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다. 그러나 유럽인들은 그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거부감도 없다.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래서 성문화가 다른 대륙에 비해 일찍부터 개방되고 노골화되지 않았나 싶다.  

유럽의 목욕문화는 고대 그리스시대에 수치료의 개념에서 시작되었다. 기원전 800년경 구약성경을 보면 나병을 앓게 된 아랍의 군대장관 나아만이 선지자 엘리스의 말을 듣고 요단강에서 일곱 번 몸을 씻은 후 피부가 깨끗해졌다는 기록이 있다. 그리고 기원전 200년경 고대 이집트인들도 청결을 위한 것보다는 종교의식의 일환으로 행했다는 기록도 있다.

그러나 일반인들의 목욕은 단순히 몸을 청결히 하는 것보다는 종교적인 계율의 성격이 강하였다. 남성은 물론 여성들이 부정한 짓을 하거나 불결한 성관계를 가지게 되면 으레 물에 들어가 몸을 씻도록 강요하였다. 특히 여성의 경우 월경이 있게 되면 반드시 몸을 씻어야 했으며 부부지간에도 성관계를 가진 다음에는 몸을 씻어야 부정을 예방한다고 생각하였다. 물론 당시 귀족이나 왕족들은 사적인 목욕시설을 갖추고는 하녀로 하여금 목욕시중을 들게 할 정도로 일상적인 목욕이 이뤄지긴 했지만 일반인들의 목욕은 대중적이지 않았다.  

그러나 로마시대로 넘어오면서 목욕은 상당히 대중적인 문화로 자리잡게 된다. 로마시대에는 그리스시대와는 달리 대중 목욕탕이 등장하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그리스 시대 개별적으로 행해지던 목욕이 여러 사람들이 함께 하는 목욕문화로 바뀌게 된다. 특히 이때에는 황제들이 치적을 자랑하듯이 서로 앞 다투어 초호화판의 대중목욕탕을 건설하는 바람에 한꺼번에 수천명이 동시에 목욕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카라카라황제의 대중목욕탕을 보더라도 목욕탕 규모가 무려 12만여평에 달했으며 한꺼번에 목욕한 인원도 2천여명에 달했다. 시설 또한 온욕과 냉수욕의 욕탕시설은 물론 도서실이나 경기장, 연무장의 부대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그래서 일반 시민들은 대중목욕탕에서 경기를 하며 목욕을 하거나 여흥을 즐기기도 했으며 운동경기를 한 후 한꺼번에 목욕을 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로마 후기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대중목욕탕도 카라카라황제의 목욕탕보다 더 큰 규모를 지니고 있었다. 시설 또한 더욱 웅장하며 호화롭게 지어졌다. 수용인원도 무려 3천명에 달했다. 때문에 물이 부족하여 대규모 수로 공사를 행한 경우도 여러 번 있었다.

물론 로마시대에는 소규모의 일반 대중목욕탕도 있었다. 특히 로마인들은 목욕을 즐긴 나머지 로마 말기에는 소규모의 목욕탕이 850여개에 달하기도 했다. 로마의 귀족이나 부자들이 개인적인 목욕탕을 두고 있었지만 자신들이 건립한 대중목욕탕에서 시민들과 함께 목욕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로마시대 초기에는 남녀 혼욕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남녀가 따로 목욕하였고 낮시간에만 목욕을 허용하였다. 특히 남녀간 불미스런 일이 일어날 것을 염려해 남녀의 목욕구분을 엄격히 제한하였다. 그러나 네로황제 이후 대중목욕탕은 혼탕으로 변했다. 남녀가 함께 목욕을 하며 환담을 하거나 여흥을 즐기는 일이 벌어졌다. 그러다 보니 남녀간에 불미스런 일이 생겼고 자연히 음탕한 문화를 만들어내게 되었다. 그래서 로마 말기에 이르러서는 대중목욕탕은 아예 타락의 장소로 변질되어 버렸다.

중세시대 또한 목욕문화는 타락의 문화였다. 서기 476년 독일 게르만족이 로마를 침공하자 로마의 화려한 목욕탕 시설이 파괴되긴 했지만 로마 말기의 타락적인 혼탕문화는 그대로 이어졌다. 귀족이나 기사들은 개인적인 목욕탕 시설을 갖추고 있었으나 하녀로 하여금 목욕 시중을 들게 하였으며 심지어는 하녀와의 성관계를 갖는 불미스런 일을 자행하기도 하였다. 대중목욕탕에서도 귀족은 물론 일반인들의 타락적인 행동은 계속되었다. 그러자 13세기 프랑스 지역에서는 혼탕을 금지시키기 위해 남녀의 공간을 엄격히 구별하는 규정을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국가의 간섭이 심할수록 목욕탕은 음성적인 장소로 변모되어갔다. 영국과 독일에서도 남녀혼탕문화가 자리잡고 있었다. 특히 당시 빈의 대중 목욕탕은 매춘부들이 드나들며 성을 사고 파는 ‘비밀 사창가’로 알려지기도 했다.  

중세 말기인 14세기에 이르자 독일에서는 목욕문화가 더욱 점진적으로 전개되었다. 특히 당시 독일의 대중목욕탕은 다른 유럽국가와는 달리 향연의 장소가 될 정도로 로마시대의 목욕문화를 답습하는 경향을 보이기도 했다. 결혼식이나 특별한 연회가 있을 때면 일반 가정이 아닌, 대중 목욕탕을 이용하였고 그곳에 초대된 모든 사람들은 맨몸을 드러낸 채 환담을 하거나 술을 마시며 여흥을 즐기기도 하였다.

물론 중세의 목욕시설은 로마시대와는 조금 달랐다. 중세 초기에는 로마시대의 목욕탕 시설을 모방했으나 11세기 터키가 동로마 제국을 침략하면서 부터는 증기탕 중심의 터키식 목욕시설로 바뀌게 된다. 그러자 입욕이 중심이면서 찬물이 아닌, 뜨거운 증기를 통한 몸의 피로를 풀게 해주는 터키식 목욕은 상류층을 중심으로 보급되었다. 그러나 증기탕 시설을 갖추기란 쉽지 않아 일반 대중을 상대로 보급되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14세기 말에 이르러서야 영국과 프랑스를 중심으로만 터키식 목욕탕이 보급될 정도였다.

그러나 중세시대의 혼탕문화는 음탕한 문화로 변질되면서 당시 성병을 확산시켰으며 매독과 혹사병을 창궐시킨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하게 된다. 그로 인해 16세기에 이르러 매독이 전 유럽지역으로 확산되자 이를 막기 위해 타락의 온상이 되었던 대중목욕탕의 이용도 전면 금지하게 된다. 때문에 유럽 사람들은 대중목욕탕을 더 이상 이용할 수 없게 되었고 자연히 일반인들의 대중목욕도 사라지게 된다. 특히 이때 유럽인들은 몸을 더이상 씻지 못하게 되자 몸의 냄새를 없애기 위해 향수를 사용하게 되었고 그것이 현재 향수의 사용을 보편화시킨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17세기에 이르면서 유럽에서는 다시 대중목욕탕이 등장하게 된다. 물론 이때에는 스칸디나비아와 러시아로부터 사우나 문화가 본격적으로 유입되면서 목욕탕 시설이 바뀌게 된다. 대중목욕탕은 과거의 단순한 목욕시설과는 달리 사우나시설이나 터키식의 열탕시설을 갖추게 된다. 그러면서 유럽의  혼탕문화도 자연스럽게 사라지게 되었다.

물론 이때부터 유럽의 목욕문화는 국가별로 그 지역의 특성에 맞게 뿌리를 내리게 되지만 당시 유럽국가 가운데 목욕문화가 비교적 발달한 국가가 프랑스였다. 프랑스에서는 17세기 말부터 대중 목욕탕 뿐만 아니라 이동식 욕조가 등장하였고 욕조임대업자까지도 생겨났다. 그러나 영국은 1837년 빅토리아여왕이 즉위할 때까지 버킹엄궁에 욕조시설이 없을 정도로 후진성을 면치 못했다. 독일과 오스트리아, 스위스에서도 이동욕조가 등장하긴 했지만 프랑스에 미치지 못했다. 특히 이때에는 유럽에 산업혁명이 일어나면서 도시로 몰려든 노동자계급들이 개인적인 욕조시설을 갖출 수 없게 되자 이동식 욕조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일반가정에도 욕조시설이 거의 보급되지 않았다. 가정에서는 몸을 씻는 것보다는 손을 씻는 정도에 그쳤다. 그러다가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난 뒤 유럽에서는 가정에 욕조시설이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하였다. 특히 당시 새로운 주택이 지어지면서 욕조시설을 갖추게 되었고 일반인들의 가정 목욕도 보편화되었다.

그러나 현재 유럽에서도 개인적인 욕조시설을 갖추지 않은 가정이 적지 않다. 독일만 하더라도 가정에 욕조시설이 모두 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독일에서는 오래된 주택이 많고 이들 주택에는 욕조시설이 아예 없다. 그러다 보니 일반 서민들은 대중 목욕탕을 이용하게 된다. 다른 유럽국가에서도 대중목욕탕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다.

현재 유럽의 목욕은 사우나식이 일반적이다. 물론 터키식의 증기탕도 있다. 그러나 유럽 사람들은 우리나라 사람들과는 달리 몸에 낀 때를 벗겨내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물로 샤워를 하는 수준에 그친다.  어떻게 보면 입욕의 개념이 강하다. 그래서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이태리 타월’이라는 때밀이 수건도 유럽에는 없다. 그리고 일반 가정에서의 목욕시간도 길지 않다. 대개 5분 내지 10분정도다. 우리 나라 사람들처럼 30분 또는 1시간 이상 하지 않는다. 몸을 적신다는 부분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물을 절약하는 차원이 강하다. 외국 사람들이 우리나라 사람들이 목욕을 할 때 물낭비가 심하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현재 유럽국가 가운데 혼탕문화를 지니고 있는 국가는 독일과 핀란드에 불과하다. 그러나 핀란드의 혼탕문화도 독일과는 조금 다르다. 핀란드의 경우 혼탕문화를 갖고 있지만 독일과는 조금 다르다. 핀란드에서는 현재 대중목욕탕에서 혼탕은 이뤄지지 않는다. 일반 가정에서만 이뤄진다. 그것도 친구 또는 가족으로 제한다. 그리고 나름대로의 사우나 규칙도 지니고 있다. 특히 핀란드에서는 “사우나 실에서는 교회에서처럼 행동해야 한다”는 사우나 실에서의 규범이 있을 정도로 남녀가 함께 목욕을 하긴 하지만 넘어서서는 안 될 선을 넘지 말아야 한다는 대원칙이 있다.

그러나 독일에서는 일반 대중목욕탕에서 혼탕이 이뤄진다. 그러다 보니 친구끼리 함께 목욕을 하는 것은 보통이고 가족은 물론 이웃집 부부와 함께 목욕을 한다. 심지어는 일가족이 동시에 목욕탕을 찾아가 시아버지와 며느리가 함께 전라의 육체를 드러내고 목욕을 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래서 독일의 목욕탕에 가면 아담과 이브가 타락의 길을 걷게 되는 에덴공원을 연상시킨다. 물론 사과나무는 없지만. 그래서 인지 한국 사람들이 독일을 여행하게 되면 으레 대중 목욕탕을 찾아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독일 사람들을 구경하기 위해 찾았다가 오히려 구경을 당하고 왔다는 농담도 있다. 물론 독일의 대중목욕탕에 얽힌 에피소드도 있다.  

한번은 한국 여성 두 사람이 독일의 대중목욕탕을 찾았다고 한다. 두 사람은 처음엔 다소 망설여졌지만 구경할 수 있는 것은 모두 구경하겠다는 생각에 용기를 내었다. 프랑크푸르트 시내의 한 대중목욕탕을 찾아 라커에서 옷을 벗고는 욕탕으로 들어갔다. 주위 남성들의 시선이 다소 거북하긴 했지만 대담함을 보이며 전혀 내색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사워를 한 뒤 구석진 곳에 자리를 잡고는 독일 남성과 한국남성의 몸매에 관한 품평회를 시작하였다. 자신들이 알고 있는 지식을 동원해 열심히 이야기를 주고 받고 있었다. 옆에서 한 동양의 남자가 목욕을 하고 있었지만 전혀 개의치 않았다. 일본인이 아니면 중국인인으로만 생각했다. 이야기가 한참 무르익어가자 동양인이 느닷없이 일어나 “안녕히 계세요”라고 말하며 자리를 떴다고 한다. 두 사람은 그 동양인이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얼굴이 화끈거려 어쩔줄을 몰라했다고 한다.  

우리의 입장에서 보면 독일의 목욕문화가 다소 낯설지만 독일에서는 혼탕문화는 상당히 자연스러운 문화로 받아들여진다. 독일인들이 남녀 노소할 것없이 함께 목욕을 한다고는 하지만 아무런 거리낌이 없고 수치심도 없다. 오히려 전라의 목욕을 하는 것이 순수함과 진실성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독일의 혼탕문화는 그들 나름대로의 또 다른 문화에 기인하는 경향이 강하다.

독일에는 에프카카(FKK)란 문화가 있다. 독일어로는 Frei Körper Kultur이며 영어로 번역하면 free body culture이다. 우리말로 풀자면 자유로운 육체의 문화다. 이 문화는 독일의 전 지역에서 행해진다. 여름철 날씨가 좋으면 호수가의 잔디밭이나 휴양할 만한 곳에는 으레 남녀 노소할 것없이 모두 홀랑 벗고 자연을 즐긴다. 외국의 누드비치가 독일에서는 시내 곳곳에 있는 셈이다. 심지어 여름철 TV에서는 에프카카를 특집으로 내보내기도 한다. 남녀들이 벌거벗고 배구를 하거나 독서를 하는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남녀의 주요부분을 모자이크 처리하지도 않는다. 특히 독일의 TV광고는 남녀의 주요한 부분만 드러내지 않으면 모든 것이 허용된다. 때문에 독일에서 남녀혼탕문화는 상당히 자연스럽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최근 들어 남녀의 목욕시간을 구분하는 대중목욕탕이 생겨나고 있다. 여자는 오전시간, 남자는 오후시간으로 제한하는 곳도 있다. 그러나 아직도 혼탕이 지배적이다. 특히 독일에서는 중세시대 일반인들이 목욕탕에서 여흥을 즐겼듯이 가족 또는 친구 부부들과도 함께 목욕탕을 찾아가 목욕을 즐기면서 맥주를 마시거나 여흥을 즐기기도 한다.  

  결국 독일의 목욕문화는 로마 시대 또는 중세 목욕문화에서 그 근원을 찾을 수 있지만 현재의 혼탕문화는 그들 나름대로의 생활방식이나 관습에 연유하는 경향이 더 많다. 따라서 목욕문화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몸을 청결히 한다는 개념에서는 동일하지만 어떻게 즐기느냐에 따라 다소 다르다고 할 수 있다.
(황원 칼럼니스트/ 베세토 2004. 10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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